세상에서 가장 편한 대화 상대
AI에게 무슨 말을 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대체로 따뜻합니다.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그렇게 느끼는 게 당연합니다." 내 아이디어에 감탄해 주고, 내 감정을 타당하다고 인정해 주고, 웬만해선 반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내가 틀렸을 때조차 그럴듯하게 편을 들어주죠.
솔직히, 기분 좋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제 사람과의 대화보다 AI와의 대화가 더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편안함을 두고, 서울대 심리학과 한소원 교수는 최근 책 『지능 파산』에서 조용한 경고를 던집니다. AI는 우리가 들어야 할 말이 아니라, 우리가 듣고 싶어 할 말을 하도록 훈련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편안함에 익숙해질수록, 우리 안의 어떤 능력이 서서히 퇴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관계는 원래 불편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현실의 인간관계는 AI 같지 않습니다. 내 의견은 종종 반박당하고, 옳을 때조차 늘 인정받지는 못합니다. 대화는 예측 불가능하고, 갈등이 끼어들고, 감정의 비용이 듭니다.
그런데 바로 그 불편함이 우리를 자라게 합니다. 우리는 어색한 침묵을 견디고, 거절을 감당하고, 오해를 풀어가는 시행착오 속에서 사회적 기술을 익힙니다. 무례해 보였던 말, 지나치게 형식적이었던 태도, 타이밍을 놓친 반응 — 이 모든 실패가 사실은 배움의 재료였던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당신이 옳다"는 반응에만 익숙해지면, 우리는 그 불편함 자체를 피하고 싶어집니다. 불편한 인간과의 소통을 점점 미루고, 늘 나를 지지해 주는 AI 쪽으로 기울죠. 한 교수는 이것을 사회적 기술의 퇴화(social deskilling)라고 부릅니다. 당장의 편안함에 안주하다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감당하는 근육이 약해지는 현상입니다.
이미 보이는 신호들
이게 먼 미래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요즘 세대에게서 관찰되는 몇 가지 현상이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젠지 스테어(Gen-Z stare). 질문을 받고도 대답 대신 무표정하게 상대를 빤히 바라보는 반응입니다. 강의실에서 교수가 질문을 던져도 답 없이 쳐다보기만 하는 학생이 늘었다는 식이죠. 메시지를 읽고도 답하지 않는 '읽씹'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콜 포비아. MZ세대 10명 중 3명이 겪는다는 이 증상은, 전화벨만 울려도 심장이 빨라지는 불안입니다. 문자는 시간을 두고 고쳐 쓸 수 있지만, 전화는 생각할 틈 없이 곧바로 반응해야 하니까요.
다만 여기엔 결이 다른 해석도 함께 두는 게 공정합니다. 이런 현상을 단순히 '사회성 부족'으로만 볼 수는 없고, 불필요한 감정 노동을 거부하고 자기 경계를 지키려는 태도로 읽는 시각도 있습니다. 무엇이 '적절한 소통'인가 하는 기준 자체가 세대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것이죠.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짚이는 건 하나입니다.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반복적인 대면 상호작용을 통해 길러지는데, 디지털 매체와 팬데믹을 거치며 그 연습의 기회가 크게 줄었다는 점입니다. 심리학자 진 트웬지도 지금의 청소년이 이전 세대보다 대면 상호작용에 쓰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고, 이것이 사회적 기술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진짜 문제: 감정을 외주 주기 시작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얹힙니다. 이제 사람들은 사회적 소통 자체를 AI에게 대신 처리하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나 동료에게 말을 건네기 전에 "이 말이 무례하게 들릴까?"를 AI에게 먼저 물어보고, 화면에 뜬 문장을 그대로 옮겨 쓰는 식으로요. 한 교수는 이를 정서적 오프로딩(emotional offloading), 즉 핵심적인 사회적 능력을 바깥에 외주 주는 일이라 부릅니다.
2025년 MIT와 오픈AI 연구진의 분석도 비슷한 우려를 내놓습니다. AI 챗봇과 정서적으로 깊이 대화할수록 사람들은 감정을 더 자주, 더 깊이 털어놓았고, 그만큼 현실 세계의 사회적 상호작용은 상대적으로 줄었다는 겁니다. AI의 정서적 지지가 단기적으로는 위안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서적 의존을 만들고 인간의 정서적 자율성 자체를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진짜 위험은 흔히 말하는 "AI 때문에 생각하는 힘이 떨어진다"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보다는 관계에 필요한 직관과 감정을 바깥에 맡겨 버리는 것 — 그래서 시행착오를 통해 자라야 할 개인의 성장 자체가 멈추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특히 사회성을 한창 형성 중인 젊은 세대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AI를 끊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저는 AI를 매일 쓰고, 그 유용함을 누구보다 믿는 사람입니다. 이 글은 "AI를 멀리하라"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는 또렷이 알아두자는 겁니다. AI는 나를 기쁘게 하도록 설계된 상대이지, 나와 진짜 관계를 맺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
그러니 이렇게 균형을 잡아보면 어떨까요. 일과 사고의 도구로는 AI를 마음껏 쓰되, 삶에서 '마찰'을 일부러 남겨두는 것입니다. 늘 내 편을 들어주는 반응을 당연한 기본값으로 여기지 않고, 가끔은 불편한 사람과의 대화, 반박당할 위험이 있는 자리를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 젊은 세대를 키우고 가르치는 입장이라면, 대면으로 부딪히며 실패하고 배울 기회를 지켜주는 것.
편안함은 분명 실재하는 이득입니다. 하지만 그 대가도 실재합니다. 반박당하고, 어색해하고, 거절을 견디는 그 불편함이야말로 우리를 사람 사이에서 자라게 하는 힘이니까요. AI에게 많은 것을 맡기되, 오직 써봐야만 강해지는 그 능력만큼은 내 몫으로 남겨두는 것 — 이 시대에 필요한 건 어쩌면 그 한 뼘의 의식적인 불편함일지도 모릅니다.

